『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단순한 수학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350년간 풀리지 않았던 하나의 간단한 수학 문제를 둘러싸고,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집단 지성을 모아 왔는지, 그리고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문제를 해결해 냈는지를 따라가는 역사 다큐멘터리이자 드라마입니다. 수학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매끄럽고 흥미로운 구성 덕분에, 출간 이후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내용이지만 다들 한번 보면 끝까지 읽는다고 합니다.
수학,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1637년,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고대 그리스 수학서적의 여백에 이 한 문장을 남깁니다. 그는 고대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정수를 다루는 책을 읽던 중, 다음과 같은 정리를 적습니다: 정수 n이 3 이상일 때, a^n + b^n = c^n을 만족하는 자연수 a, b, c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정리에 '놀라운 증명'을 찾았지만, 여백이 좁아서 적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학사상 가장 악명 높은 문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시작입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수학시간에는 안 배웠던 걸로 기억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문제 자체는 수학적으로 매우 간단해 보인다는 말합니다. 고등학교 수학 수준으로도 문제의 문장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증명은 300년 넘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여기에 매달렸고, 실패했습니다. 심지어 한때는 이 문제를 푸는 것보다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수학과 거리가 먼 제 입장에서는 수학자들끼리의 밈같은 느낌이지만 그들 안에서 엄청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수학자들만 관심사였던 이 역사적인 수학 문제를 사이먼 싱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엮어냅니다. 그는 수학사 초창기부터 근현대 수학까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복잡한 개념들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와 예시를 들어 풀어냅니다. 예를 들어, 페르마 정리의 해법과 연결되는 모듈러 형식, 타니야마-시무라 추측, 타원 곡선과 같은 개념들도 등장하지만, 이를 '도형 간의 약속' 혹은 '대수와 기하의 대화'처럼 감각적인 언어로 바꿔 설명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읽는 내내 흥미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학자들의 인생사, 논문 발표 비하인드, 경쟁과 협업, 좌절과 환희는 마치 미드 한 시즌을 정주행 하는 느낌을 줍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점점 이 문제에 몰입하게 되고, 마침내 증명이 성공하는 순간엔 그 감동에 울컥하게 됩니다.
앤드루 와일스의 7년 은둔과, 한 편의 드라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진짜 주인공은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입니다. 그는 열 살 무렵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수학책에서 이 정리를 처음 접한 뒤, “나중에 내가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인생 대부분을 이 문제에 바칩니다. 특히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거의 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혼자서 몰래 이 문제를 연구합니다. 이유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먼저 발표해 버릴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책은 와일스의 연구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수학자 리처드 테일러 외에는 아무에게도 이 작업을 알리지 않았고, 모든 논문과 개념을 노트에 수기 정리하며 비밀리에 증명을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려 2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이 탄생했지만, 첫 발표 직후 작은 오류가 발견됩니다. 수개월 간 고치지 못하자 그는 거의 포기할 뻔했고, 우울증 비슷한 상태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4년, 마지막 퍼즐을 기적처럼 떠올리며 마침내 증명을 완성합니다. 이 장면은 책에서도 클라이맥스입니다. 수학적 설명을 모르는 독자라 하더라도, 이 순간의 감동은 충분히 전달됩니다. "수학을 증명하는 데 왜 인생을 거냐?"는 질문에 대해, 이 책은 단순한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정적, 철학적 대답을 줍니다. 단순한 수학 문제가 아닌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으로 프레임을 바꿔서 누구나 이루지 못해 가슴에 품어두었던 꿈을 향한 이해와 열정으로 유대감을 만들어 냅니다.
수학책이 아닌 드라마 소설
사이먼 싱의 문장은 간결하고 리듬감이 있으며, 무엇보다 친절합니다. 수학자도 아닌 그가 이토록 깊이 있는 수학 이야기를 이렇게 흡입력 있게 서술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수학 개념은 그림과 비유로 설명하고, 독자의 눈높이를 끝까지 배려합니다. 독자는 수학을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와 인간 문명의 도전을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책을 읽은 뒤, 저는 이 책이 단지 교양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일종의 헌사입니다. "진실은 증명될 수 있다"는 믿음,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꾸준히 생각하는 사람도 결국 인정받는다"는 믿음, 그리고 "실패는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라는 교훈까지. 그것은 독자가 어떤 직업을 가졌건, 어떤 인생을 살고 있건 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건, ‘지식’보다 ‘감정’이었습니다. 수학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한 명의 아이가 품은 꿈이 어떻게 세계적인 성취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 서사이자, 지성에 대한 예찬이기도 합니다. 와일스가 자신이 증명한 논문을 마무리한 뒤 조용히 "나는 이제 진정한 평화를 얻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예술가의 완성된 작품처럼 숭고합니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이 읽으면 ‘지적 호기심’을, 대학생이 읽으면 ‘몰입의 중요성’을, 성인이 읽으면 ‘인내와 헌신’을, 노년 독자가 읽으면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 어떤 수식도 외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책은 증명할 필요 없는 진실을 들려줍니다: “간절한 집념은 결국 현실이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책입니다. 읽고 나면 당신도 ‘나만의 페르마 정리’를 찾아 증명하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독서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인 이야기 후기(로마사, 시오노 나나미, 비판적 독서) (0) | 2025.06.05 |
---|---|
천의 바람이 되어 줄거리와 감상 (추모시, 죽음, 작자미상) (0) | 2025.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