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바람이 되어》는 죽음을 위로하는 한 편의 시가 가진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작자 미상의 시 ‘a thousand winds’를 중심으로, 이 시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는지, 또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이 책은 단순한 추모시 해설서를 넘어선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일본의 멀티 아티스트 아라이 만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부인을 위한 추모문집에서 이 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시의 출처를 추적하고 음악으로 재해석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작자도 연대도 알려지지 않은 한 편의 시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죽음과 삶, 존재와 기억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곡으로 유명하고 저는 그 곡을 JTBC의 뜨거운 싱어즈에서 김영옥 배우가 부르는 것을 듣고 깊은 여운과 울림을 느꼈습니다.
추모시에서 시작되는 여정과 예술로의 확장
아라이 만은 ‘a thousand winds’라는 제목의 시를 처음 접한 순간, 단순한 문장이 주는 강한 위로와 평온함에 깊이 이끌린 것 같습니다. 이후 그는 이 시의 원작자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이 시는 인터넷이나 추모집을 통해 떠돌던 작자 미상의 글로 알려져 있었고, 미국의 9·11 테러 추모식 및 수많은 장례식에서 낭송되며 널리 퍼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라이 만은 이 시의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속적 신념과 세계관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악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는 이 시를 ‘천의 바람이 되어’라는 곡으로 만들었고, 2003년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단순한 추모곡 이상의 울림을 지닌 이 노래는 일본 전역에 퍼지며 많은 장례식과 위로의 현장에서 사용되었고,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를 위로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도 김효근 작곡가가 동일한 시를 바탕으로 ‘내 영혼의 바람이 되어’라는 곡을 만들어 발표하였고,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감사를 이끌어냈습니다.
55555555
555555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
책 속에는 아라이 만이 추리한 ‘시의 기원’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져 있습니다. 아메리칸 원주민, 특히 나바호족의 삶과 비극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년 우파시와 소녀 레이라가 있습니다. 문명의 탐욕으로 인해 터전을 잃고 강제로 이주당한 원주민들 가운데, 이 둘은 고향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눈물로 이별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레이라가 출산으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되며, 절망한 우파시는 그 뒤를 따라가려 합니다. 이때 친구 츄이라타가 들려주는 시가 바로 ‘천의 바람이 되어’입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 없다. 천의 바람이 되어 그대 곁을 맴돈다”는 이 시는 단순한 문장이지만,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이들과의 교감을 이어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지 ‘애도’를 위한 것만이 아닌 ‘남은 자의 삶의 방향’이 됩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 시는 이 세상에 없는 그리운 이가 생각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위로를 해줍니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적으며 제 나이 39,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보낸 어머니가 생각나 속이 울렁이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이 시가 이 시로 만들어진 노래가 저를 위로하며 보고 싶은 어머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작자 미상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던 이 시의 저자는 1998년에 밝혀졌습니다. 미국 볼티모어에 살던 평범한 가정주부,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Mary Elizabeth Frye) 여사가 1932년에 지은 시라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당시 독일에서 온 유대계 여성 친구가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해 괴로워하자, 메리 여사는 즉흥적으로 종이 한 장에 이 시를 써 건넸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이 시는 복사되고 구술되며 익명으로 퍼지다가, 20세기 후반에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프라이 여사의 시는 시적 기교보다는 진솔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라이 여사의 이름은 한동안 시에 붙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익명성이 시 자체의 보편성과 감동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작가가 누구인지 몰라도, 이 시가 주는 위로에 공감하였고, 그만큼 다양하게 재창작되고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작자 미상’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이 시의 메시지를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셈입니다.
《천의 바람이 되어》는 하나의 시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존재와 기억, 그리고 문화와 언어를 잇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아라이 만이라는 예술가가 시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미스터리 추적기가 아니라,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구조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입니다. 원주민의 이야기, 프라이 여사의 삶, 일본과 한국의 음악가들이 이 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까지 모두 담고 있는 이 책은 하나의 ‘문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다룬 시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시가 전하는 “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남겨진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이 세상에 없어서 가슴 시리게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혹여 과거의 이별로 리움에 잠겨 계신 분이라면 아니면 정말 안타깝게도 지금 슬픔 속에 계신 분이 있다면 《천의 바람이 되어》가 말없이 곁에서 속삭이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길 기대합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답니다.
그곳에 잠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천의 바람이, 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거예요.
- 천의 바람이 되어 중 -
'독서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인 이야기 후기(로마사, 시오노 나나미, 비판적 독서) (0) | 2025.06.05 |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고 (수학, 미스터리, 드라마) (4) | 2025.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