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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2

지크 리뷰 (영지물, 이종족, 먼치킨 성장 판타지)

by 독서광(진)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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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김하준 작가가 집필한 대하 판타지 소설로, 현대 한국식 영지물 장르의 시초 격이라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어린 영주 지크가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수많은 이종족과 힘을 합쳐 하나의 강대한 이상향 국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무수한 양판소와 영지물들이 그 뒤를 잇고 있지만, 《지크》는 특유의 순수함, 스케일, 캐릭터 설정, 그리고 독자적 세계관 덕분에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적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지크를 보고 나서 영지물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고 영지물을 찾아보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크》의 세계관, 테마, 전개 양상, 그리고 장단점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소년 영주의 이상향 국가 건설기

《지크》의 주인공은 후안 영지의 소년 영주 ‘지크’입니다. 처음 마주친 후안 영지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읽은 저에게도 매우 놀라운 영지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인간과 이종족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몬스터로 구분되는 오크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지크는 어렸을 적부터 함께 지내온 엘프, 드워프, 오크 등 다양한 이종족들과의 우정을 쌓고 그가 성장한 후 영지의 정책으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지크는 인종과 종족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조화롭게 사는 사회를 꿈꿉니다.

지크의 영지는 오지에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은 주인공을 뛰어넘는 먼치킨 마을입니다. 땅을 파면 금이 나오고, 씨를 뿌리면 곡식이 넘쳐나는 ‘축복받은 땅’ 위에 세워진 영지는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는 오크들에게 빌린 땅에 농장을 조성하고, 드래곤의 묵인 아래 광산 개발에 성공하면서 자금력을 얻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크는 ‘지크 상회’라는 상단을 만들어 대륙 전역에 식량을 보급하고, 고의로 손해 보는 장사를 벌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동시에 거대한 유통망을 구축합니다.

그 결과, 지크는 대륙 3대 상단 중 하나가 될 정도로 거대한 상권을 거머쥐게 되고, 자연스럽게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에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영지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 간섭 없는 독립 국가’를 건국하려 결심하게 됩니다. 제가 봤을 때 이 ‘국가 건설기’는 이후 수많은 한국식 영지물 판타지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핵심 요소입니다.

신, 이종족, 고대종과 엮인 스케일 확장

《지크》는 초반부에는 전형적인 영지물 구조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중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이 급격히 확장됩니다. 과거 천족과 마족의 대전, 그 사이에 낀 반마족과 고대종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역사적 설정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서사는 ‘신화’ 수준으로 확대됩니다.

지크가 어린 영주에서 점차 이종족의 중심인물이 되어 가는 과정에는 그의 전생 설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알고 보니 지크는 ‘엘프의 시조’이자 ‘주신 아리안의 하급신 지크롬’의 환생이었고, 이로 인해 모든 종족과 신들로부터 총애를 받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먼치킨적인 파워가 더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스케일이 커지면서 전개가 산만해졌습니다. 악마의 봉인, 마족의 대리전쟁, 반마족의 부활 등 다양한 설정이 뒤섞이며, 기존의 정돈된 영지물 전개와는 괴리감이 생긴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독자 중 일부는 “신의 환생이라는 설정은 감정 이입을 방해한다”거나 “이야기가 갑자기 너무 비대해진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신의 환생 설정이 없이 그냥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처음 느낌 그대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초반의 설정과 전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길고 복잡한 전개, 그리고 ‘하렘 + 먼치킨’ 공식

《지크》는 총 20권 이상의 분량을 자랑하는 초장편 소설입니다. 초반에는 주인공이 어떻게 몰락한 귀족가를 일으키고, 오지 영지를 발전시켜 대륙의 중심이 되는가를 따라가는 데 집중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파워 인플레이션과 하렘물적 요소가 강하게 부각됩니다.

지크는 페로몬이 강해 수많은 이종족 여성들과 엮이며, 기사, 마법사, 신관 등 다양한 속성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 ‘소드마스터’ 급으로 성장해 하렘을 구성하게 됩니다. 지크의 모친은 30대 미망인인데, 지크의 며느리로는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 700살 엘프, 하프엘프까지 등장하며, ‘가족관계의 나이 역전’이라는 특이한 설정도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등장인물 수가 많고, 부수적인 스토리라인이 길게 이어지는 탓에 ‘사이드 스토리로 몇 권씩 잡아먹는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오크 한 명을 잡기 위한 수십 장의 추격전, 성검의 비밀에 얽힌 수백 페이지 등은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끊고 피로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방대한 세계관과 파생 스토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무한 확장 우주’처럼 느껴지며 일종의 중독성을 유발합니다.

《지크》는 분명히 ‘시작은 영지물, 끝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현대 판타지의 클래식으로, 영지물의 교과서 같은 구조를 따르면서도, 나중에는 모든 장르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판타지로 진화합니다. 영지 개척, 상단 설립, 국가 건국이라는 흐름과, 신성력, 고대 유물, 마족과의 대전, 전생 스토리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관 자체는 방대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성이 작품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영지물 특유의 정돈된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과한 파워 인플레와 전개가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스케일 큰 이야기와 클리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추억 보정이 가능한’ 고전의 명작으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영지물이 ‘지크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상향 국가 건설, 이종족 연합, 하렘 요소, 초능력 성장 서사 등은 《지크》가 대중화시킨 클리셰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크》는 단순한 판타지 소설을 넘어, 한국 웹판타지의 초기 유전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편이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1~2년에 한 번씩은 꼭 보게 되는 애착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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