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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2

아린 이야기 2부 집중 해부 (복수, 드래곤, 여운)

by 독서광(진)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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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 이야기》 1부가 드래곤이라는 존재로서의 정체성 확립, 여주인공의 자유롭고 파괴적인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2부는 보다 어둡고 복잡한 내면의 서사로 전환됩니다. 복수라는 클리셰 아이템이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동력입니다. 엉뚱하고 좌충우돌 해츨링 아린의 밝은 이야기가 조금은 심오하게 바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개가 무너지는 구조를 보여줘서 아쉽고 반복적인 내용이 많아도 피로도도 느낍니다. 이번 글에서는 2부의 줄거리, 인물 관계, 주요 설정, 감상과 평가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복수로 시작된 2부의 어두운 분위기

2부의 서사는 1부의 열린 결말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주인공 아린과 그녀의 어머니 세르니안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중심에 놓입니다. 세르니안은 드래곤 일족 중에서도 극도로 폭력적이고 냉혹한 존재로, 인간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파멸되어 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린은 죽은 할머니 세실리스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를 죽이는 임무를 안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 전개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서 아린의 정체성, 가족, 혈연이라는 주제를 건드립니다. 당시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드래곤이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나 주제였지만 인간의 삶을 살았던 심지어 불행한 가족관을 가지고 있는 아린이라서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선은 충분히 다뤄지지 못합니다. 중요한 클라이맥스를 허술한 연출로 흘려보내며, 독자들은 ‘감정적 폭발’보다는 ‘허탈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전투가 끝난 후 아린의 변화는 거의 묘사되지 않습니다. 복수를 통해 어떤 감정을 해소했는지, 그녀의 가치관이나 인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이야기는 곧바로 다음 모험으로 넘어갑니다. 이는 클라이맥스를 무력화시키고, 전투 자체를 단순한 에피소드처럼 만들어버립니다. 복수를 둘러싼 복잡한 감정선은 매듭을 짓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버립니다. 저는 작가가 자신도 느끼고 누렸던 인간적인 감정의 가족관계를 글로 투영하지 않고 드래곤적인 가족 관계를 상상하고 쓰다 보니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특별한 드래곤인 아린에게 감정몰입을 더 시켰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리셋되는 세계와 붕괴된 서사 구조 그리고 드래곤의 삶

2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설의 구조는 바로 반복적인 '리셋' 구조입니다. 이야기가 일정 부분 진행되면 아린은 이유 없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씩 잠을 자고, 깨어난 뒤 전혀 새로운 상황, 인물, 공간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초기에는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도 오래 사는 이종족과 관계를 만들어갈 때 이제는 클리셰적인 설정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친구라면 일정 나이가 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게 되며 성인이 된 후에는 여러 문제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비슷한 경험과 고민으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실인데 판타지 세계관에서 인간의 수명과 드래곤의 수명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린의 유희에서 만나는 인간들하고는 어쩔 수 없는 결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린이 드래곤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지만, 인연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드래곤의 삶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많은 독자들에게 큰 피로를 느끼게 한 것 같습니다. 일단  문제는 이 리셋이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플롯을 전개하기 힘든 작가의 탈출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서사를 구조화하고 중심 갈등을 끌어가기보다는, 어려운 지점이 나오면 '잠들기', '세기 전환', '공간 이동' 등으로 건너뛰어 버립니다. 결국 이야기의 연속성과 감정선의 흐름은 끊기고, 독자들은 더 이상 아린의 여정에 몰입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중후반부에 아린이 무협 세계로 이동하는 장면은 전체 이야기에서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입니다. 아무런 예고도 설명도 없이 기존 세계관과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배경이 등장하며, 작품은 갑자기 무협풍 판타지로 변모합니다. 이 역시도 마치 독립된 단편을 억지로 본편에 삽입한 듯한 이질감을 주며, 전체적인 몰입을 완전히 깨뜨립니다. 아린이라는 캐릭터도 이 무협 세계에서 특별한 내적 변화를 겪지 않으며, 여전히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합니다. 이런 평가들도 있습니다.

실패한 소설? 작가가 주는 여운

《아린 이야기》 2부는 중심 인물들의 서사 정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1부에서 아린과 긴 시간을 함께했던 류미르, 세이몬 같은 주요 동료들은 2부에서는 점점 배경화 되고, 이야기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들의 감정선은 마무리되지 않고 사라지며, 작중에서 그들의 존재 이유마저 모호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말입니다. 작가는 2부 후반에서 어떤 중심 메시지도 제시하지 않고, 전체 이야기를 애매하게 마무리합니다. 아린이 선택한 삶의 방식, 그녀가 경험한 복수와 파괴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독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캐릭터를 따라왔던 독자들에게 극도의 허탈감을 안깁니다. 이러한 마무리 방식은 ‘열린 결말’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사실상 이야기의 중단에 가깝습니다. 설정은 회수되지 않고, 인물 간의 갈등과 관계도 정리되지 않으며, 사건의 의미도 흐릿해집니다. 작가가 이야기의 결말을 설계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마무리했다는 비판이 많은 이유입니다. 다만, 이 결말은 역설적으로 많은 팬픽과 2차 창작을 낳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원작에서 회수되지 않은 감정선과 설정을 팬들이 해석하고, 재창작하면서 아린은 더욱 풍부한 캐릭터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원작보다 팬픽 속 아린이 더 깊이 있고 매력적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팬픽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린 이야기》 2부는 복수와 상실, 그리고 파괴된 서사 구조 속에서 독자들에게 다른 방식의 ‘기억’을 남깁니다. 서사로서의 완성도는 분명 낮지만, 감정과 설정의 파편은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린 이야기가 여전히 인터넷 커뮤니티와 팬덤에서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구조가 무너진 서사가 갑자기 튀는 모든 것들이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만났던 드래곤들의 습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드래곤이 되고 싶었고, 드래곤의 진짜 삶을 글로 쓰고 싶었던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인간은 드래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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